DIARY


희블리희블리의 병가일기 09. 행복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희블리
2021-06-11
조회수 707
  • 날씨 : 완전 쨍한 여름 날씨/오후에 흐림+비
  • 날짜 : 6월의 아홉, 열번째 날
  • 통증 : 은은하게 뭉근한 통증(이제 좀 사라질 때도 된 것 같은데 말이지..)
  • 약 : 9일 밤 100mg / 10일 밤 안 먹음
  • 컨디션 : 보통


왜 엄마가 찐 계란은 맛있을까? 늘 궁금했다. 맨날 물어만 본다. "엄마 이거 계란 어떻게 찐거야?" 안 해먹을거면서. "엄마 감자는 어떻게 쪄?" 귀찮아서 안 쪄먹을거면서. 엄마는 오구 내새끼 하면서 하나하나 다 알려주는데. 이번 주말에는 감자좀 쪄볼까. 엄마 어떻게 찐다고 했지? 까먹었어.


강여사가 정성껏 가꾼 싱그러운 정원. 엄마 마음 속 모양 같다. 엄마 마음엔 늘 꽃이 피어있다. 가지런히, 알록달록, 부지런히 언제나 활짝 피어있다. 엄마 품이 따뜻하고 행복한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낙지의 변천사. 좀 잔인하지만.. 우리 엄빠는 이 낙지가 나의 기력을 회복시켜주며 나의 병을 완치시켜주는데 8할을 차지한다고 믿는다. 우리 아빠 왈 "자고로 낙지는 입에서 냄새가 날 때까지. 잉? 토할 때 까지 먹어브러야써. 언넝 팍팍 좀 머거라" 아빠.. 내 배 속에 낙지가 헤엄치는 것 같아. 나 낙지될 것 같은데? 배부른 소리.


울 엄마의 찐-미소 = 쇼핑할 때. 몇 년 전 같이 괌 여행을 갔었는데, 쇼핑 천국인 괌에서 가방을 양 옆으로 메고 캐리어까지 고르고 찐 미소를 짓던 우리엄마의 모습을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이제는 여름 옷 살 때 가장 중요한 건 '소재'다. 엄마랑 돌아다니면서 제일 많이 한 말은 "아 이거 더워더워". 더운거 핵 싫어하는 엄마와 나. 역시 피는 못 속여. 엄마가 빨리 나으라고 신발 사줬지롱 헤헤(자랑) 다 나아브따.


낮에 엄마랑 커피 마시며 책 읽으러 근처 카페에 갔다. 생기고 나서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곳이라 탐색 겸 간 카페에는 19년을 산 치와와 한 마리가 있었다. 앙상한 몸에 귀도 들리지 않고 눈도 보이지 않게 늙어버린 강아지였다. 몸에 힘도 없으면서 자꾸 돌아다니며 머리를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고, 여간 맘이 쓰이는 것이 아닌가! 강아지를 부르는 소리를 내며 박수를 쳐봐도 오지 못하고 계속 치매걸린 할머니처럼 앞으로 전진만 한다. 애잔하고 짠하고 사느라 애썼다는 마음이 계속 들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주인은 큰 고통이겠지... 자연의 순리를 '그냥 자연스러운거지' 라고 받아들이기에는 아직도 나는 경험이 어리다. 옆에서 이렇게 상상만으로도 안구에 습기가 찬다. 별꼴이야 정말. 오지랖.


다 큰 딸 아파서 성가신 울 엄마. 어째야쓰까잉.. 걱정마! 밥도 건강히 잘 챙겨먹고 운동도 열심히 해서 튼튼한 몸 만들다 보면 언젠가 아팠던 것도 잊어버리지 않을까? 엄마가 바깥 정원을 잘 가꾼 것처럼 나도 내 마음의 정원을 잘 가꿀게. 이제는 안 아플거야. 안 아프고 싶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