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ARY


희블리희블리의 병가일기 01. 제일 소용없는 일이 도망이야

희블리
2021-05-31
조회수 645
  • 날씨 : 흐린 뒤 맑음, 오후 3시에 밖에 나가서 5분만 걸으면 땀이 나는 온도
  • 날짜 : 5월의 마지막 날
  • 통증 : 사르르 찌르르 은은한 통증, 잔여감, 밤에 심해짐
  • 약 : 저녁에 한 번 100mg
  • 컨디션 : 쏘쏘, 살짝 기력없음 
  • 오늘의 차 : Milkey Oolong
  • 오늘의 노래 : 너에게 난, 나에게 넌


9시 20분, 눈을 떴다.

와 아 아아 병가여도 휴가 같은 이 기분,

월요일 아침을 침대에서 밍기적 거릴 수 있다니 

벌써 병이 낫는 것만 같아. HP+10


요즘 오나오(오버나이트 오트밀)를 나름 꾸준히 챙겨먹는 중이다. 오트밀(귀리)이 비타민도 많고, 이것도 좋고 저것도 좋고 아주 좋은 거 투성이다. 네이버 지식인만 보면 오트밀은 만병통치약이다.

벌써 병이 낫는 것만 같아. HP+20


내 최최최애 강하늘 배우님의 최신 영화 '비와 당신의 이야기'를 아직도 못봤다. 슬프다. 속상하다. 괴롭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CGV를 뒤진다. 아니 이 넓은 서울에서 단 2곳에서만 상영중이다. (사실 개봉한지 한 달이 지남) 멀다. 속상하다. 슬프다. 괴롭다. 어쩔 수 없지. 넷플릭스나 왓챠에 올라오길 기다리는 수 밖에.


오늘은 치료받으러 병원에 가는 날,

평일 오전 10시 반에도 2호선 열차는 앉을 자리가 없다.

다들 어딜 그렇게 바쁘게 가는 걸까.

하루 쯤은 모르는 사람 뒤 꽁무니를 졸졸 따라다니고 싶다.

이름하야 뒤꽁무니 여행.


아무리 생각해도 괜시리 수치스러운 치료. 이것에 대해선 나와 가장 친한 몇 명하고만 나누고 싶다.

사실 말해도 상관없는데 괜히 우리들만의 비밀을 만들고 싶기 때문에. 힛.


얼마전 회사에서 받은 롯*백화점 상품권 10만원.

멀리 나온김에 써야지. 완치되면 바로 시작할 필라테스를 위해 준비하는 마음으로다가 쇼핑을 했다.

뭐니뭐니해도 장비빨 아니겠어? 열심히 고르고 나니 내 손에 5천원이 남았다. 세에상 뿌듯해버리네 거참.


먹고 싶은 것, 땡기는 것 없는 요즘 그래도 늘 커피는 아주 강렬하게 땡긴다. 밥과 커피를 한 번에 해결하고 싶어서 들어간 엔제리너스 카페 평소엔 잘 가지도 않는데 이 데일리 세트가 나를 끌어당겼다.

아직까지는 (실내에서)뜨거운 아메리카노를 마실 수 있는 날씨라 다행이다.

한가한 평일 오후 카페에서 반미 샌드위치를 먹으며 요즘 푹-빠져 있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겨우, 서른]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마치 중국에 내 대학동기들이 살고 있는 느낌이랄까.

여느 서른들은 이맘 때 쯤 느끼고 경험하는 것들이 어쩜 이렇게 비슷한지.

자극적이지 않아서 좋은 드라마다. 생각없이 편하게 보고 있었는데 이런 대사가 나왔다.

"제일 소용없는 일이 도망이야."

괜시리 심장이 시큰했다. 적어도 나에겐 위로였고, 나약해진 마음을 건들여준 외침이었다.

뒤에서 괴한이나 아주 큰 곰이 쫓아오지 않는 이상 현실에서 도망치는 건 소용없는 일이다.

특히나 무조건 내가 마주할 수 밖에 없는 일이라면 더더욱 소용이 없겠지.


나도 나에게서 도망치고 싶지 않다.

내 상황에서 내가 해야하는 일들에서 핑계대고 싶지 않다.

적어도 내가 하는 선택에 '도망'이라는 선택지는 지우고 싶다. 도망가지 않는 연습을 해야겠다.


요즘 우리 트기(기특이)도 아프다.

주인 닮아 이러나.. 통풍이 잘 되는 곳에 두고 때때로 바람을 쐬어줘도 그걸로는 많이 부족한 것 같다. 정말 죽이고 싶지 않은데,,, 괜히 트기에게도 감정이입을 하게 된다. 너무나도 살리고 싶다.

오늘 상하고 아픈 부분들을 잘라내고 뽑아주었다.

내일은 조금 덜 아프기를, 더 기특해 해줘야겠다.


월요일 오후 4시 뷰

펭수잠옷입고 쇼파에 누워 넷플릭스 보기. 그저 행복


뜨거운 물을 만나기 전에는 토끼똥마냥 아주 작고 동글동글했는데 어느새 활짝 피어버렸다. 누구에게나 활짝 피어날 기회가 있다. 향긋하고 재미있는 맛 밀키우롱티. 차의 우려난 색깔과 젖은 잎을 관찰하는 것이 꽤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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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일 전 비가 세차게 내리는 날 아침, 하늘은 까맣고 사방군데서 물이 튀기고 내 옷이 금방 싹 다 젖어버릴 것만 같은 기분 나쁜 상상을 하던 중 갑자기 내 마음에 엄청난 평안이 찾아왔다. 지금 내리는 이 거센 비들로 나를 감싸주고 계시는 하나님, 그 어디나 하늘나라 이며 결코 아무것도 두려워 말라는 마음이 깊고 깊고 깊-게 느껴졌다. 내 안에서 늘 일하시는 하나님 감사하고 사랑합니다.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여호와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 (시편 19:14)


Yes, Jesus Love me.